자작시

추자도 서쪽 바다

최인숙산호수 2012. 9. 15. 17:03

추자도 서쪽 바다

 

 

   

 

 

저렇게 두꺼운 책을 펼칠 수 없는 것은

맨 처음의 기억과 너를 잊었기 때문

파도를 피하는 것만 맨발로 익혔을 뿐

자주 얼굴 바꾸는 바다는

딱딱한 겉표지가 없다

 

푸른 종이에는

어느 것 하나 움직이지 않는 사연이 없다

가끔 너의 무지개가 나타나 나를 놀라게도 하지만

과묵한 바위도 물풀 흔들며 제 이야기를 꺼내놓는다

책상 위로 배 한 척 길게 밑줄 그으며 지나간다

 

그 책을 마음대로 읽을 줄 아는 자는 오직 하늘뿐

작살의 비에 책장이 숭숭 뚫리기도 하지만

그 내용이 다시 책에 들어가

쏠배감펭의 노래나 눈이 순한 고래의

휘파람으로 한 페이지를 장식하며 다음 장으로 새롭게 넘어간다

이곳 이야기는 부력의 힘으로 둥둥 떠 누군가에게 흘러간다

 

하늘이 피곤한 눈동자를 감으면 책 속에는 또 별이 뜬다

너덜 해진 책에 어둠을 덧대고 한 번 더 단단히 묶어주는 별빛

바느질 자리마다 환하게 일렁인다

 

 

 

 
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   2012 시에 가을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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