자작시

번지점프

최인숙산호수 2018. 8. 21. 12:30

번지점프

 

 

 

 

발목을 묶으면 앞이 사라집니다

앞이 사라지면서 앞 대신 깊이가 생겨납니다

햇살이 뱀의 허물처럼 벗겨집니다

물 위에 음각되는 얼굴들은 가볍고 섬세해서

둘둘 말아 쥐거나 통과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

잠자리의 눈을 빌려 허공을 조각내고 있습니까

벗어나지 못한 고치처럼 지금 내 발을 당기는 것은 무엇입니까

 

눈과 코와 입이 다 눈으로 몰려듭니다

던져버릴 것은 다 던졌는데 나는 왜 여기에 묶여 있습니까

할랄하고 난 살코기처럼 나를 내게서 떼어 내십시오

나를 풀어 주고 강물은 다시 산 그림자를 우물거리고 있습니다

 

누군가 지퍼처럼 자기를 열고 뛰어내립니다

 

 

 

'자작시' 카테고리의 다른 글

나의 다른 상자들  (0) 2018.08.23
딸기 상자  (0) 2018.08.22
낡은 침대  (0) 2018.08.20
따지고 보면 그것은 립스틱 때문이야  (0) 2018.08.17
베어링  (0) 2018.08.16