자작시

나의 다른 상자들

최인숙산호수 2018. 8. 23. 12:30

나의 다른 상자들

 

 

 

 

나는 상자를 만든다

네 개의 귀퉁이를 세워

상자는 표정이 없다

 

상자를 열면

토끼가 튀어나온다

큰 귀가 뛰어간다

귀에 걸렸던 안경

굴러가며 반짝인다

반짝이며 사진 속으로 들어간다

밋밋했던 바다와 사막이 울렁거리고

떠도는 빙하는 점점 줄어든다

꽃이 떨어진다

바닥으로 모래와 얼음, 꽃잎이 흩어진다

 

나는 상자 속으로 들어간다

빈 꽃병을 안고

꽃병은 쑥스러워하며 꽃을 안는다

꽃병 속으로 사막과 빙하와 바다가 따라 들어간다

어리둥절해 하는 나에게

토끼는 긴 귀와 빨간 눈을 달아준다

 

상자를 닫는다

나를 안에 남겨두고

상자 속에서 나는 다시 상자를 만든다

쌓여가는 상자

벽이 흔들린다

 

 

 

 

 

 

 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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